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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보, 고마워 !
No : 467        작성자 :   운영자(122.40.2.0)     첨부파일 : 파일       작성일 : 2007/12/20 14:09:21     조회 : 28297  
여보, 고마워 ! 
 
Ⅰ. 들어가며... 
막상 합격을 하고, 돌연 합격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니, 머릿속이 멍하니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아 어처구니없습니다. 이렇듯 제 수험생활의 정신건강을 지켜준 것이 망각의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암기의 사명을 띤 수험생 입장에서 볼 때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겠죠. 
 
수험방법론은 이미 저보다 뛰어난 모든 분들이 소개했으니, 저는 제 이야기를 재미나게(?) 소개해 드리렵니다. 
수험기간 내내 달력을 앞에 두고 공부한 적 없고, 계획을 세워본 일 한번 없고(심지어 시험 한 달 전까지도 시험날짜를 정확히 몰랐습니다.),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공부하였기에 제 공부 방법은 여러분께 권장할 바 못 된다 생각됩니다. 
 
Ⅱ. 공대생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양공대 기계공학과(94학번)를 2002년에 졸업했습니다. 머리 좋은 많은 친구들과 경쟁했고, 나름 좋은 성적으로 대학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홀로 외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뚱딴지 같이 법학에 꽂혀 변리사 시험에 도전했으나, 보기 좋게 KO패를 기록했죠. 철이 들지 않은 망아지 같은 놈이 쉽게 열 수 있는 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공학도라 하더라도 법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다만, 누군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공학도로서 고시나 자격시험에 매달리는 자들은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말을 듣고 참으로 많은 반성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때 젊음을 불사르며 사랑했던 기계공학을 버린 것이 너무나 한스럽고 안타깝지만, 많은 젊은이들을 공무원시험이나 고시로 몰아넣는 국가적 현실을 탓함을 위안 삼아 제 자신을 정당화 시키곤 합니다. 
 
가끔은 두툼한 원서에 계산기를 들고 동기들과 캠퍼스를 누비던 기억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가슴 따뜻한 그리운 친구들입니다. 이제는 친구들에게 법무사 공부를 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희들은 나보다 똑똑하니깐 금방 합격할 수 있을 꺼 야. 내가 했는데 니들은 못하겠냐?/"라고요. 제 생각엔 공대생 특유의 단순무식 정신이면 난공불락은 없다고 봅니다. 공대생 여러분들 힘내세요. 다른 학과생 여러분도, 직장인 여러분도 모두 힘내세요. 이건 평범한 사람들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다만 쬐금 더 고된 도전일 뿐입니다. 
 
Ⅲ. 결혼과 수험생활 
제가 변리사 시험에 실패하고, 부모님께도 버림받기 일보 직전에서 저를 구원해 준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제 아내입니다. 시부모님으로부터 잡석 같은 저를 양도받아, 피나는 노력으로 법무사라는 앙증맞은 조각을 만들어냈죠. 저는 그녀의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얼마짜리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무엇보다도 백수인 저를 사위로 맞아주시고, 지금까지 참고 견뎌주신 장인, 장모님께 엄청 감사드립니다. 또한 몸 바쳐 키운 자식을 백수로 장가보내는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받으신 제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백수남편을 두고 모진 세월 견뎌준 제 아내에게는 무량겁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의 눈물이 있었기에 제가 법무사의 반석에 올라 앉아 있을 따름입니다. 
 
2004년 봄 신접살림 차리고 처음 법무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제 아내와는 13년 남짓 연애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고, 안정된 둥지 위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수험요령에 대한 무지와 신혼의 단꿈 속에서 헤매다가 1년 넘는 기간을 허송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2005년 1차 시험에서 낙방하여 양가 부모님께 다시 한 번 실망을 안겨드렸습니다. 혼자서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학원에 다녀야 할 타이밍을 놓쳤고, 가정에 대한 노력이 서툴러 이리 저리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죠. 백수인 주제에 양가 부모님들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만 가득했지 요령이 없었고, 아내에 대한 것도 그러했습니다. 
 
수험기간 동안 저를 참으로 힘들게 한 것은 가족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간을 아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가족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다가설수록 부담만 되는 것이죠. 애틋하지만, 함께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면에 철판 깔고 양가 부모님께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고, 가사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아내와 함께 놀러 다니고, 드라이브도 하고, 맛 집 찾아다니고, 좋은 온천 찾아 놀러 다니고, 양가 부모님들도 열심히 모시고 다녔죠. 평일에도 오후 6시까지 공부를 마친 후 아내와 영화도 종종 보러 다니고, 부모님들 집에 들러 식사도 하고, 날씨 좋으면 저녁에 산책도 하고요. 지금 생각하면 공부한 기억이 없을 정도로 엄청 돌아다녔네요. 그러나 저는 지금도 무엇이 최선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저는 부모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들이 저에게는 세상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무거운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는 못난 남편이었고, 부모님들께도 자식 노릇 좀 하고 싶은 미련한 자식이었습니다. 
 
부모님께도 감사드리지만, 못난 사위 시시때때로 좋은 옷 사서 입혀주시고, 맛난 것도 많이 사주신 장인, 장모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공부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실수로 2005년 1차 시험은 실패했으나,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본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결국 처녀, 총각들 보다 부족한 시간을 만회할 방법은 집중력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아내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청소와 빨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한편, 저는 음식을 못하여서 설거지를 돕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남자가 하기에도 가사노동은 힘들고 짜증나는 것이니, 남성분들은 가사노동을 무시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힘들었다 한들, 가정을 이끌고 직장생활 하시며 합격한 분도 계시니, 저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가정을 갖고 계신 수험생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가정이 있다는 것은 공부에 부담일 수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Ⅳ. 슬럼프 
생각보다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슬럼프에 빠지곤 합니다. 대다수가 그것도 엄청난 기간동안 경험하죠. 여기서 빠져 나오지 못해 실패에 이르는 경우도 너무 많구요.  
 
저 역시 어마어마한 기간 동안 슬럼프에 빠지곤 했습니다. 헤어나려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며칠 동안 리모콘을 들고 방안을 굴러다니며 TV를 보다가 잠들다가를 반복하기도 하고, 차를 몰고 나가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종종 장인어른이 운영하시는 목재소에 나가 일도 돕고, 개와 놀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놀다 보면 어느새 공부하고 싶어집니다. 다행히 제 아내는 저의 그런 모습을 묵묵히 지켜봐 주었고(속은 끓었을지언정), 미안한 저는 얼른 공부에 복귀했죠. 그러면, 신선한 두뇌로 전보다 더 힘차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Ⅴ. 공부와 놀기의 절충 
놀수록 수험기간이 길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심심한 것은 못 견디므로, 곧잘 놀곤 했습니다. 동물원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 밤새도록 PC방에서 오락도 많이 해봤습니다. 다음날 공부에 지장을 줄 정도로 놀기도 했습니다. 워낙 무계획으로 공부한 탓에 스케줄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강의시간에는 오직 강의에만 충실했고, 독서실에서도 나름대로 충실했다 생각합니다. 정신이 산만한 날에는 공부 걷어치우고 그냥 드라이브도 하고, 아내와 데이트도 하였습니다. 
 
우리 시험은 그런 것 같습니다. 불성실하게 들릴지 몰라도, 놀 때는 지대로 놀아도, 공부할 때에만은 정신통일 하면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라 것! 다만, 심히 놀면 저처럼 수험기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Ⅵ. 자신감!!! 
공부할 때에 있어 책에 기가 눌리면 시험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1차에 실패한 것도 방대한 상법, 부동산등기법에 기가 눌린 때문이었고, 공탁, 호적 등도 미치도록 어렵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혹자는 자잘한 절차법은 쉽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모든 과목들이 좌절감 그 자체였습니다. 일단 그 과목이 어렵다면, 학원 강의를 충실히 따라서 그거 하나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한번 외면하면, 두고두고 발목 잡는 과목이 됩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으면 정복할 수 없습니다. 
 
Ⅶ. 막판정리 
이 내용부터는 말씀드리기가 참 조심스러운데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즉흥적으로 무계획적으로 공부했고 제 책상위엔 여러 과목의 책들이 굴러다니곤 했습니다. 수험가의 설에 따르면 ~회독을 해야 한다는 둥, 문제집을 꼭 풀어봐야 한다는 둥... 참 말도 많습니다. 학원강의를 듣는 것도 1회독이라 한다면, 굳이 할말이 없지만, 저는 정식으로 1회독을 한 책이 아직까지 별로 없습니다. 사놓고 풀지 못한 문제집이 너무 많구요. 지긋이 앉아 책 하나만 보는 다른 수험생들을 보면 ‘어떻게 심심하게 저렇게 하나만 보나’하며 신기해하곤 했습니다. 저는 사례나 학원강의 속에서 문제점을 느낀 부분만 깊이 보는 스타일입니다. 민법도 따로 CASE집을 푼 게 없고, 단지 학원 다니면서 필요하니까 김종률 사례집만 덜렁 사놓았을 뿐이며, 다만 학원에서 배포되는 사례들은 어쩔 수 없이 볼 수밖에 없는 정도였습니다. 하나를 끝까지 파면, 열개가 얻어진다고 할까요? 그리고 아마도 저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하다가 까먹고 나중에 생각나면 또 생각하고...그러나 그런 방법은 시험에 임박해 암기에 커다란 부담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하니, 아무래도 상기한 제 요령보다는 다른 합격생의 조언을 참고들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저는 본격 공부SEASON을 대략 시험 전 2~3개월 정도로 잡습니다. 암기SEASON인 것이죠. 1차, 2차 공히 그러합니다. 12회 1차시험 때는 극심한 강행군의 후유증으로 시험을 치른 후 1개월 정도 아무 것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고, 13회 2차시험에서는 더 심한 강행군을 해야 했습니다. 2차시험 전날에는 너무나 힘든 나머지 책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난시가 찾아와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한 머리로 그동안 밀린 공부를 따라가는 것은 이루 말 못할 고통입니다. 1차, 2차 공히 제 점수의 대부분은 그 기간에 쌓아올린 것입니다. 초라하게도 1차 대비 모의시험들에서 제가 기록한 최고점은 67점에 그쳤었고, 2차 3순환 채점에서도 저는 항상 중간을 맴돌곤 했습니다. 하지만, 1차, 2차 모두 실전에 임하여서는 커트라인은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점수로 통과했습니다. 미련하게도 말이죠. 
 
수험생 여러분은 모의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시험 당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일격필살! 아시죠? 수험생의 나날들은 바로 그 날 작렬시킬 필살기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모래성을 쌓았습니다. 비록 그 모래성이 시험 당일에만 건재하다가 다음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라도, 바로 그 날 완성되어야할 모래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무너져버렸습니다.) 
 
아무튼, 저는 늦게 발동이 걸려 시험에 임박해 너무 고통을 받았습니다. 수험생 여러분들은 저와 같은 우를 범하지 마시고, 수험기간 안배 잘 하셔서 편안하게 합격하심이 바람직하리라 생각됩니다. 저 같은 미련퉁이도 했으니, 다른 분들은 더 잘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Ⅷ. 맺음말 
열심히 놀다가 1차 한번 떨어지고, 그 다음에 확실히 놀고 확실히 공부하다가 합격했습니다. 여러분! 놀기 위해서 공부하고, 공부하기 위해서 놀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 놀고 있을 때 까맣게 타들어 숯덩이가 된 속내를 감추며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내에게 그리고 부모님들께 지은 죄, 어찌하면 다 씻을 수 있을지 이 철부지는 다시 한 번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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